혼자 떠나는 여행은 낯설지만, 겨울이라는 계절은 오히려 그런 시간을 잘 품어준다. 사람들로 가득 찬 계절이 아니라는 점에서 겨울은 혼자 머물기 좋은 계절이다. 외롭지 않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풍경이 아니라 나만을 위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이번엔 혼자 떠나기에 더없이 좋은 국내 겨울 여행지 세 곳을 소개한다. 어딘가 멈춰 서 있고 싶은 순간, 이곳들이 조용한 배경이 되어줄 것이다.
강원 평창 오대산 상원사 – 겨울 고요가 깃든 산사의 시간
겨울 산사에는 계절이 아닌 시간이 머물고 있다. 오대산 자락 깊숙이 자리한 상원사는 평창의 대표적인 사찰 중 하나지만 겨울이면 그 존재감이 더욱 선명해진다. 산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면 하얀 눈을 뒤집어쓴 전나무 숲과 묵직한 적막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도착한 상원사 입구에는 늘 정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스님들의 발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눈 쌓인 처마와 얼어붙은 종각은 마치 시간을 정지시킨 듯하다.
이곳의 진짜 매력은 혼자일 때 더 빛난다. 누구의 말도 필요 없는 공간, 말 대신 침묵이 공간을 채운다. 사찰 내부에 머물 수 있는 템플스테이도 가능하니 하룻밤을 조용히 보내고 싶다면 좋은 선택이다. 방에서 바라보는 눈 덮인 숲, 마룻바닥에 스며드는 찬 공기, 따뜻한 차 한 잔. 그 모든 것이 혼자 있는 시간을 오히려 더 풍요롭게 만든다. 스마트폰을 잠시 꺼두고 산사의 리듬에 귀 기울인다면 마음속 겨울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전북 부안 내소사 – 바다와 산 사이, 단아한 겨울 정취
전라북도 부안 변산반도 국립공원 자락에 위치한 내소사는 사시사철 아름답지만 유독 겨울엔 그 단아한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사찰까지 이르는 600년 수령의 전나무 숲길은 눈이 쌓이면 영화 속 장면처럼 신비롭다.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고요한 위로를 받는다. 내소사는 규모가 크지 않아 혼자서 둘러보기 부담 없고 주변이 모두 산과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세상과 단절된 듯한 느낌을 준다.
겨울 바다는 내소사 인근 격포항이나 채석강에서도 볼 수 있는데 찬 바람이 불어오는 해안길을 걷다 보면 마음속 소란이 조금씩 잠잠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번화가가 없고 대형 숙소보다 소박한 게스트하우스나 한옥 숙소가 많아 혼자 조용히 머물기에도 알맞다. 따뜻한 방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흩날리는 눈과 나무 사이로 희미하게 들리는 파도 소리가 여행의 깊이를 더한다.
이곳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장소다. 조용히 앉아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단지 하늘을 바라보는 일조차 여행의 의미가 된다. 그런 여백이 필요할 때 내소사는 좋은 대답이 되어줄 수 있다.
경북 안동 병산서원 – 낙동강이 감싼 고택의 겨울
병산서원은 유교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조선 시대 서원으로 낙동강 옆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안동이라는 도시는 전통의 무게가 짙은 곳이지만 병산서원은 그중에서도 유독 고요하고 단정한 공간이다. 겨울이 되면 기와지붕 위에 눈이 내려앉고 마당을 가로지르는 발자국 하나 없이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의 장점은 서원 앞 넓은 강변 풍경과 탁 트인 공간감이다. 다른 관광객이 거의 없고 서원 내부도 개방되어 있어 언제든 편히 앉아 있을 수 있다. 강변 언덕에 오르면 멀리까지 이어지는 낙동강과 평야가 한눈에 들어오고 바람에 따라 겨울빛이 유영하듯 흐른다. 그런 풍경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마음이 채워진다.
안동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차로 이동해야 하지만 그 거리만큼 일상의 소음과도 멀어지는 느낌이다. 인근에 있는 하회마을이나 월영교도 조용한 산책에 적합해 하루 정도 천천히 머무르기에 좋다. 겨울의 차가운 기운과 전통 건축의 따뜻한 결이 어우러진 병산서원은 혼자 머물기에도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기에도 아주 잘 어울리는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