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명소는 아름답지만 조용하진 않다. 계절의 풍경을 오롯이 마주하려 할수록 우리는 더 깊고 덜 알려진 장소를 찾게 된다. 수많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엔 아직도 원형 그대로의 자연이 남아 있고 빠르게 변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느릿한 기척으로 계절을 담아내는 곳들이 있다. 오늘은 그 고요함 속에서 진짜 계절을 마주할 수 있는 사람 없는 절경 세 곳을 소개하려 한다.
충남 청양 칠갑산 천장호 – 잔잔한 호수에 시간을 띄우다
청양 칠갑산 자락에 숨은 천장호는 아직 많은 여행자에게 낯선 이름이다. 충남의 작은 산중호수로 화려함은 없지만 보는 이의 마음을 가만히 가라앉히는 조용한 매력을 지녔다. 특히 아침 안개가 피어오를 무렵 호수 위로 희뿌연 물안개가 부유하는 풍경은 이 세상 같지 않다. 여름이면 녹음 속에서 고요한 푸르름을 겨울이면 눈 덮인 산자락과 얼어붙은 수면이 절제된 아름다움을 그려낸다.
천장호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상업 시설이 거의 없다. 정식 매표소도 번쩍이는 안내판도 없다. 대신 조용한 산책로와 짧은 나무다리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유명 관광지가 아니기에 사람의 발길이 적고 호수 둘레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마음의 속도를 줄일 수 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대신 눈으로 오래 담고 싶은 풍경. 말보다는 침묵이 자연스럽게 배어드는 이 공간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하루에 머무르기에 딱 알맞은 곳이다.
전북 진안 운일암반일암 – 돌이 만든 풍경, 시간이 멈춘 계곡
운일암과 반일암은 진안의 깊은 계곡을 따라 자리한 기암절벽 지대다. 이름부터 생경하지만 이곳은 신비로운 암석과 고요한 물줄기가 어우러진 전북의 숨겨진 절경이다. 수백만 년 동안 깎이고 다듬어진 암석들이 계곡을 따라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며 독특한 음영을 만들어낸다.
이 계곡의 매력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주말에도 조용하고 안내방송 하나 없이 자연의 소리만이 공간을 채운다. 여름엔 시원한 물소리가 귀를 적시고 가을엔 단풍과 바위의 대비가 더욱 또렷해진다. 겨울이면 물줄기가 얇게 얼어붙어 빛에 반사되며 얼음 조각 같은 풍경을 만든다.
운일암과 반일암이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해가 떠도 져도 조용히 멋을 부린다. 바위에 앉아 흐르는 물을 따라 마음을 흘려보내다 보면 어느새 시계바늘 소리조차 잊게 된다. 유명 관광지의 틈을 벗어나고 싶을 때 오래된 풍경 앞에서 숨을 고르고 싶을 때 이 계곡은 늘 같은 자리에 조용히 있다.
경북 봉화 분천마을 산타열차 종착역 뒷마을 – 철로 끝에 남겨진 겨울
분천역 하면 산타열차와 겨울 축제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진짜 아름다움은 역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을 때 시작된다. 관광객들이 분천역 앞의 조형물과 열차만 둘러보고 떠날 때 뒷마을은 조용한 겨울을 품고 있다. 철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눈 위에 새겨진 오직 내 발자국만이 이어지고 멀리서 들리는 열차의 소리만이 시간의 흐름을 알려준다.
이 지역은 고도가 높고 산세가 깊어 겨울이면 순백의 설국이 된다. 가끔 주민들이 내놓은 장작 더미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있어야 그곳에 사람이 산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고요하다. 전형적인 관광지의 틀을 벗어난 마치 영화 속 배경 같은 마을. 그 안에서 혼자 천천히 걷다 보면 마음이 환기되는 느낌을 받는다.
철로 끝 마을에는 작은 간이역 느낌의 찻집도 하나 있다. 오래된 난로 옆에 앉아 차를 마시다 보면 창 너머로 내리는 눈이 흘러가는 기차처럼 지나간다. 번화함이 아닌 조용한 시간 속에서 겨울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분천역 뒷마을은 다시 오고 싶은 여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