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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보다 더 깊은 산 속 – 겨울 호젓한 산골 마을 여행지

by 비안트 2025. 4. 18.

 

겨울이 깊어질수록 산은 더 조용해진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산골 마을은 특히 그렇다. 하얀 눈이 모든 소리를 덮고 나면 세상은 마치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곳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겨울 산골 마을을 찾아 떠나는 일은 바다를 마주하는 여행보다 훨씬 더 내면으로 깊숙이 스며드는 경험이다. 오늘은 그런 고요한 겨울 속에서 바다보다 더 깊은 시간을 품고 있는 산골 마을들을 소개한다.

 

바다보다 더 깊은 산 속 – 겨울 호젓한 산골 마을 여행지
바다보다 더 깊은 산 속 – 겨울 호젓한 산골 마을 여행지

 

경북 영양 수비면 – 하늘 아래 첫 마을

 

경북 영양군 수비면은 태백산맥 자락 깊숙이 숨겨진 마을이다. 전국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지역 중 하나로 겨울이 되면 더욱 적막함이 짙어진다. 그저 눈 덮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무에 덮인 눈송이조차 바스락 소리를 낼까 조심스럽게 스친다. 이곳은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불리기도 한다. 주변에 고도가 높은 산들이 많아 해가 가장 먼저 뜨고 또 가장 먼저 지기 때문이다.

 

수비면의 겨울 풍경은 마치 한 폭의 수묵화 같다. 산줄기 사이로 안개가 피어오르고 낡은 초가집 지붕 위로 하얀 눈이 차곡차곡 쌓인다. 사람의 인기척이 드문 골목길을 지나 겨우 문이 열린 마을슈퍼에 들어서면 할머니 한 분이 난로를 피워놓고 고구마를 굽고 계신다. 이런 장면들이 이곳의 일상이고 그 일상이 여행자의 마음을 데운다.

 

특별한 관광지나 유명 맛집은 없다. 대신 마을 언덕을 오르면 발밑으로 펼쳐지는 설경과 하늘과 맞닿은 고요함이 있다. 그 고요는 도시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종류의 감정이다. 추위마저도 정직하게 느껴지는 수비면의 겨울은 그렇게 사람을 조용히 안아준다.

 

 

강원 정선 임계면 – 눈 내리는 탄광 마을

정선은 워낙 산세가 깊고, 역사적으로도 오지 중의 오지로 불렸다. 특히 임계면은 정선에서도 외곽에 자리한 작은 탄광 마을이다. 한때는 탄을 실은 트럭들이 오가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따라 옛길을 걷는 이들만이 드문드문 찾는다.

 

겨울의 임계면은 회색빛 풍경 위에 눈이 내려 더욱 고요해진다. 눈 속에 파묻힌 탄광 기찻길, 그 위에 쌓인 나뭇잎과 녹슨 철로가 만들어내는 장면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보인다. 주민들 대부분은 연로하고 마을의 절반은 빈집이다. 하지만 그 빈집들조차 겨울에는 또 다른 풍경이 된다.

 

한적한 오후 탄광사택으로 쓰였던 벽돌집 앞에서 엿가락처럼 휘어진 굴뚝을 바라보면 이 마을이 품고 있는 지난 시간을 짐작할 수 있다. 눈이 더 쌓이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이곳은 관광지라기보단 풍경 그 자체로 존재한다. 그러니 겨울엔 이 조용한 시간을 함께 나누기 위해 천천히 걸어보는 것이 가장 어울리는 방식이다.

 

전남 곡성 죽곡면 – 강물과 마을 사이 흰 그림자

남도라고 해서 겨울이 따뜻한 건 아니다. 특히 곡성의 죽곡면처럼 산과 강 사이에 낀 마을은 바람이 채 지나가지 못해 냉기가 깊게 깃든다. 이곳은 섬진강 지류 중 하나인 보성강 상류에 가까워 강물의 습기와 겨울의 찬기가 섞이며 특유의 한적하고 서늘한 공기를 만들어낸다.

 

죽곡면은 작은 마을들이 산재해 있는 형태다. 하나의 중심이 되는 곳이 없기에 마을이라고 부르기보단 사람 사는 터전들이 강가에 흩어져 있다는 표현이 더 맞는다. 아침이면 강 위로 안개가 피어오르고 그 안개는 사람도 길도 집도 가린다. 그래서 이곳의 겨울은 흐릿하지만 분명한 기억처럼 스며든다.

 

죽곡면의 매력은 느림에 있다. 시계를 꺼내도 시간은 줄지 않고 자동차를 타고 달려도 풍경은 천천히 흐른다. 강가에 놓인 평상 위에는 이따금 꿩이나 고라니가 발자국을 남긴다. 어느 농가의 장독대엔 살얼음이 끼고, 담벼락에는 아직 수확하지 못한 고춧대가 바람에 흔들린다. 누군가의 겨울이 여기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이 마을엔 커피숍도, 숙소도 없다. 단지 묵은 시간 위에 새 눈이 덮이고 그 눈이 아무 말 없이 모든 것을 감싸 안는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되는 겨울 산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