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행이라고 하면 흔히 벚꽃이나 유채꽃처럼 만발한 꽃길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봄은 꽃만으로 완성되는 계절이 아니죠. 맑은 하늘, 녹아든 들판, 고요한 물결, 부드러운 산 능선까지 우리를 사로잡는 봄의 본질은 때로 풍경 그 자체에 담겨 있습니다.
오늘은 꽃보다 더 깊은 감동을 주는 국내 여행지 세 곳을 소개합니다.
1. 경북 예천 – 회룡포 전망대, 강물로 그려낸 봄의 곡선
경북 예천군에 위치한 회룡포는 한반도 지형처럼 휘감아 도는 낙동강 지류의 곡선이 절경을 이루는 곳입니다.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면서도 관광지화가 많이 진행되지 않아 조용하고, 특히 봄에 그 곡선이 더욱 또렷하게 살아납니다.
전망대에 오르면 강물이 마을을 둥글게 감싸며 천천히 흐르는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죠. 주변 산들은 연초록 새순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그 사이를 흐르는 강은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입니다. 마치 자연이 직접 그린 거대한 수묵화 같은 풍경이에요.
특히 이곳의 아침 시간대에는 강 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르며, 곡선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됩니다.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이유도 그 때문이죠. 회룡포 마을로 내려가면 강을 따라 산책할 수 있는 길도 잘 정비되어 있어 걷기만 해도 봄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2. 전북 고창 – 고인돌 유적지 평원, 바람이 그리는 봄의 시
고창의 고인돌 유적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지만, 역사적 의미에 비해 관광지로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입니다. 특히 봄이면 넓은 평원이 녹색으로 물들며, 바람과 빛이 풍경의 주인공이 되는 공간이 됩니다.
이곳은 흔한 꽃길이 아닌, 드넓은 대지 위에 펼쳐진 고요한 고인돌 무리들 사이로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이 흘러요. 바람에 일렁이는 잔디밭, 점점이 놓인 고인돌,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하늘과 지평선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마치 한 편의 시 같습니다.
산책로는 넓고 평탄하며, 이따금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와 갈대의 사각거림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왜 그토록 바쁘게 살아왔는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조용히 돌아보게 해주는 공간이죠.
조용히 걷다가 돌무더기 옆 바위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면, 꽃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마음속에 들어옵니다.
3 강원 양양 – 남애항에서 물치항까지, 바다의 계절을 걷다
꽃이 피는 봄은 산과 들만의 계절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바다 역시 봄을 맞이합니다.
강원도 양양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해안길 트레킹 코스가 존재합니다. 남애항에서 시작해 물치항까지 이어지는 약 6km의 해안선은 봄의 햇살을 받으며 유난히 부드럽고 맑은 바다색을 보여줍니다.
이 길의 가장 큰 매력은 바다 풍경의 변화입니다. 한쪽에는 바다가 있고, 반대편에는 민가와 작은 밭, 소나무숲이 어우러져 있어, 풍경이 자주 바뀌며 걷는 재미가 있어요. 파도가 잔잔하게 밀려오는 바위길을 지나고, 갑자기 모래사장이 나타나며, 그 끝에는 낚시하는 현지인들의 평화로운 모습까지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봄의 해안선입니다.
봄에는 찬 기운이 가시고, 바다색이 유난히 밝고 맑아져서 파란 하늘과 만나는 경계가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혼자 걷기에도 부담 없고, 조용히 걸으며 생각 정리하기에 제격인 길이죠.
꽃 대신 파도, 바람, 하늘을 벗 삼아 걷는 이 해안길은, 봄을 완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듭니다.